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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Drama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

by 포니 2023. 11. 2.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작품 개요

출처(source):&nbsp; 다음 영화 &lt;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gt;

제목: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The Boy and the Heron, 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개봉일: 2023년 10월 25일
장르: 애니메이션, 모험, 판타지, 드라마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줄거리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시기로 주인공 소년 마히토는 공습으로 어머니를 잃게 된다. 그 후 1년이 지나도 마히토는 여전히 어머니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하지만, 아버지는 죽은 어머니의 친동생인 나츠코와 재혼을 하고 아이까지 가지게 된다. 마히토의 아버지는 군수 공장의 사장으로 나츠코의 본가로 마히토와 이사를 한다. 마히토는 어머니와 똑 닮은 자신의 이모이자 새엄마인 나츠코의 존재가 불편하기만 하다. 마히토 부자가 나츠코의 저택으로 이사를 온 날, 저택 복도까지 날아든 왜가리를 쫓아 저택 옆 탑에 도착한 마히토는 그 탑을 짓고 어느 순간 사라졌다는 큰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전쟁으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 군수 공장 사장인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마히토는 전학 첫날부터 학생들과 싸움을 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히토는 돌로 자신의 머리를 때려 스스로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저택에 돌아와 집안 사람들의 간호를 받게 된다. 한편, 이사 첫날 마주친 왜가리는 꿈속에서 본 엄마처럼 "마히토 구해줘"라고 외치며 마히토의 주변을 맴돌고 마히토는 왜가리의 정체를 알아내기로 결심한다. 마히토는 우연히 얻은 왜가리의 깃털로 화살을 만들던 중 아픈 몸을 이끌고 숲 속으로 향하는 나츠코를 목격한다. 이후, 저택에서는 나츠코가 사라져서 난리가 나고 마히토는 저택에서 일하는 키리코 할멈과 함께 나츠코를 찾으러 간다. 나츠코를 찾으러 간 탑에서 만난 왜가리는 마히토의 분노를 자극하고, 마히토는 왜가리의 깃털로 만든 화살로 왜가리를 위협해 나츠코가 있는 곳을 안내하라고 추궁한다.
왜가리의 안내로 이세계로 넘어온 마히토는 다양한 모험을 하게 된다. 어느 무덤 근처에서 펠리컨의 공격을 받다가 젊은 시절의 키리코의 도움을 받게 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와라와라를 펠리컨으로부터 구해준 히미와도 마주치게 된다. 왜가리의 안내로 대장장이의 집으로 향한 마히토는 사람을 잡아먹는 앵무새 군단과 마주하고, 앵무새 군단에게 잡아먹히기 직전 히미의 도움으로 구조된다. 히미는 자신이 나츠코의 언니이며 나츠코는 탑에서 출산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마히토를 안내한다. 한편, 현실 세계에서는 마히토의 아버지와 사람들이 나츠코와 마히토를 찾아 헤매고 히미와 마히토는 현실 세계를 연결해 주는 문고리를 통해 잠시 현실로 넘어가지만 마히토는 나츠코를 두고 갈 수 없다며 다시 탑 안으로 돌아온다. 이들은 금줄 종이가 쳐진 탑의 산실에서 나츠코를 데려가려고 하지만 어떠한 힘에 의해 방해를 받고 모두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마히토는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되지 않는 상황에서 큰할아버지로 추정되는 노인을 만나고, 노인은 마히토에게 자신의 뒤를 이을 것을 권한다. 다시 눈을 뜬 마히토는 왜가리의 도움으로 앵무새 군단으로부터 탈출하고, 앵무새 왕은 기절한 히미를 큰할아버지에게 데려간다. 큰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악의없고 평화로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하지만 마히토는 자신 역시 악의를 가진 존재이며 현실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이를 지켜보던 앵무새 왕의 횡포로 이세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히미와 마히토는 도망쳐 각자의 현실로 돌아간다. 
현실로 돌아온 마히토에게 왜가리는 이세계에서 있었던 일은 잊힐 것이라고 말하며 작별인사를 건넨다. 시간이 지나 나츠코의 아이가 태어나고 전쟁이 끝난 후 마히토의 가족이 다시 도쿄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감상 포인트

출처(source):&nbsp; 다음 영화 &lt;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gt;

1.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들의 오마주
지브리의 거장으로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으로 알려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는 지브리의 지난 작품들을 연상케 하는 다양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저택에서 일하는 할멈들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유바바를 연상케 하고,  나츠코의 산실에서 종이 금줄이 인물들을 방해하는 장면 역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하쿠를 쫓던 종이 비행기와 비슷한 모양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와라와라들은 <모노노케 히메>의 코마다들과 꼭 닮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탑 안의 문고리를 돌리니 다른 세상으로 이어진다는 설정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설정과 유사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왜가리가 탑 안에서 가져온 물건이 있는지 묻고 탑에서 겪은 일들은 잊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 역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가 하쿠로부터 머리끈을 받아 왔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의 모험을 잊어버린 장면과 겹쳐진다. 이외에도 지브리 기존 작품들을 연상케 하는 다양한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내가 감상하며 강하게 느낀 오마주들은 이 정도이다. 
 
2. 줄거리를 함축한 듯한 엔딩 OST
일본의 떠오르는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켄시가 부른 엔딩 OST "지구본"의 가사는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듯 하다. 잔잔하고 어딘가 먹먹하기도 한 멜로디와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떠났음을 암시하는 가사는 어머니를 잃은 마히토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것처럼 들린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고, 살아가며 힘들고 외로운 시기를 겪겠지만 그럼에도 가슴에 희망을 품고 계속해서 살아가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노래. 무언가 허무하게 끝난 느낌이 드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울려 퍼지는 이 노래가 비로소 영화를 진정으로 마무리하는 것처럼 들린다. 
 
3. 감독의 어린 시절 경험에 기반한 자전적 이야기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유년 시절 경험에 기반한 자전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원작으로 거론되는 동명의 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머니가 미야자키에게 읽으라고 선물한 책의 이름이다. 책의 내용과 영화 줄거리는 많이 다르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받은 책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영화 속에서 마히토의 어머니가 마히토에게 남긴 책의 이름 역시 동일하다는 점은 이 영화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임을 시사한다. 
영화 속 캐릭터에서도 감독의 자전적 요소가 드러난다. 군수용품 공장장인 아버지, 병으로 오랜 시간 누워 지내야 했던 어머니, 전쟁 당시 공습으로 피난을 해야 했던 경험과 비교적 유복했던 성장배경 등 작품 속 주인공 소년 마히토는 어쩌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자신의 유년기 모습을 빗댄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 이세계의 큰할아버지는 현재 나이가 든 자신의 모습을 빗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큰할아버지는 이세계는 자신의 피를 이은 후손만이 이어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데, 어쩌면 은퇴를 앞두고 자신의 작품 색깔을 이어받을 수 있는 지브리의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감상평

내용 전개가 꽤 난해하고 불친절한 편이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지브리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였다. 끊임없이 해석을 하면서 영화를 감상했기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마히토가 모험을 한 이세계는 마히토의 꿈, 혹은 현실과 사후 세계의 경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세계에서 만난 키리코, 히미, 나츠코, 마히토 모두 건강한 편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마히토의 엄마 히미와 큰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현실의 키리코는 나이 많은 노인이고 나츠코와 마히토 역시 몸이 좋지 않아 저택에서 요양을 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내용 전개가 어지럽고 이미 세상을 떠난, 혹은 현실에서 몸이 좋지 않은 존재들과 모험을 한다는 점에서 이세계는 어쩌면 현실과 사후세계 그 어디쯤이지는 않을까. 큰할아버지와 히미가 마히토와 나츠코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는 것은 사후 세계의 문턱에서 다시 그들의 삶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보았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저 눈에 보이는 것처럼 정말 현실 이면의 이세계에 다녀왔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과 조류 그 어딘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왜가리, 사람처럼 움직이고 행동하는 앵무새 군단, 그 외에도 현실에서는 마주할 수 없는 다양한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는 탑 내부의 세계는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가 터널을 지나 마주한 세계를 떠오르게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자전적 영화이자 은퇴작이라는 점과 다양한 지브리 작품들의 오마주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꽤 흥미로웠지만 사실 감상하면서 불편하고 거슬리는 부분들도 있었다. 제2차 대전 태평양전쟁 시기이면 한국은 일제강점기 시기였을텐데 군수사업을 하며 부유하게 생활하는 일본인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영화 초반부터 굉장히 불편했다. 아무리 감독 본인이 반전주의자이고 작품 속에서 반전주의 요소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한국인으로서 당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한다면 절로 불쾌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차라리 전쟁 중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판타지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불쾌함이 조금 덜 했을까? 그리고 마히토 아버지의 재혼상대가 마히토의 이모, 즉 어머니의 친동생이라는 점도 한국인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이다. 어떻게 자신의 처제와 재혼하고 아이까지 낳을 수 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설정이었다. 이러한 점들이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캐릭터 설정이라는 점에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무언가 찝찝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흥미로운 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도 많은 작품이다.